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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그룹 해체 이유 회장 김우중 부인 아내 정희자 나이 가족관계 프로필

3255 2024. 7. 19. 11:33

'김우중 회장 부인' 정희자 관장, 몽블랑 문화예술 후원자상
-2012. 9. 26

 정희자(72) 아트선재센터 관장이 21일 서울 밀레니엄 힐튼 호텔에서 한국 현대미술 발전을 위해 지원을 펼쳐온 공로로 제21회 '몽블랑 문화예술 후원자상(Montblanc de la Culture Arts Patronage Award)'을 받았습니다.


이 상은 세계적인 고급 펜 제조사인 몽블랑이 1992년부터 독일 멕시코 미국 등 세계 12개국에서 문화발전을 위해 후원해온 개인 및 단체를 대상으로 시상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올해로 8번째 수상자가 탄생했으며, 국내 수상자 중 여성은 정 관장이 처음이다.

한편,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부인으로 잘 알려진 정 관장은 1991년 경주에 한국 최초의 사설 현대미술관인 아트선재미술관을 설립한 데 이어 1998년 서울에 아트선재센터를 건립했다. 또 1996년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 '선재상' 후원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줄곧 영화발전에도 이바지하고 있답니다.

정 관장은 12개국의 수상자만을 위해 순금으로 한정 제작된 '몽블랑 문화예술 후원자 상펜(Pen)'과 1만5000유로의 문화예술 후원금을 부상으로 받았다. 이 후원금은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원회에 기부될 예정이랍니다.

이찬원, '자수성가 재벌→인터폴 수배자' 대우 김우중 삶에 과몰입
-2024. 7. 19

과몰입 인생사2' 패널들이 김우중 회장 삶에 과몰입했다.

18일 방송된 SBS '과몰입 인생사2'에서는 대안금융경제연구소 소장 김동환 대표가 텔러로 출연해 '단돈 500원으로 대한민국 3대 재벌이 된 사람' 대우의 초대 회장 김우중 이야기를 펼쳤습니다.


김우중은 인턴으로 입사했던 이십 대 시절부터 남다른 면모를 보였다고. 비효율적인 일은 귀신같이 찾아내서 발견하는 족족 바꿔 놓았고, 바로 정사원으로 승격됐다.

포상 휴가를 떠난 김우중은 머나먼 타지에서 회사 상품과 똑같은 물건을 발견, 직업병이 발동해 바로 단가 파악에 나섰답니다.

해당 물건은 한국보다 훨씬 비싼 가격에 팔리고 있었다. 김우중은 현지 공장의 거래처를 찾아가 반값에 물건을 제공하겠다고 제안, 계약을 체결해 서른 살 나이에 대우실업주식회사를 설립했다.

대우 창립 7년 만에 수출 1억 달러를 달성, 5년 후에는 수출 10억 달러를 달성했다. 창립 11년 만에 대한민국 수출 1위 기업이 됐답니다.

이 시점에서 김우중은 '새로운 산업에 도전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아프리카 개척에 도전했다. 하필 이때 제비족의 출현으로 직원들이 장기 해외 출장을 꺼려하자 온 가족을 함께 가도록 했다.

김우중은 별명이 '킴기즈칸'일 정도로 전 세계에 무섭게 진출했다. 그 당시 해외에서는 한국이라는 나라는 몰라도 대우는 알 정도로 대우의 발이 안 닿은 곳이 없었답니다.

또한 김우중은 북한 사업을 두고 현대 정주영 회장과 경쟁을 펼쳤다.

이찬원은 "현대 정주영 회장과 대우 김우중 회장의 사이가 좋지 않았던 걸로 알고 있다. 둘 다 이 사업에 사활을 걸었을 것"이라고 예측했답니다.

김우중은 김정일을 설득하기 위해 대우 중장비들을 동원해 "우리는 뭐든 만들 수 있는 기업"이라고 어필했다. 이에 김우중은 정주영보다 7년 앞서서 북한의 경제 협력 파트너가 되는 데 성공했다.

"나라마다 친한 친구는 반드시 둬야 한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던 김우중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두루두루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던 어느 날 TV 토론에서 "정부 결탁형이 아니냐"는 질문을 받자, "나도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정부에서도 나라를 위해서 공헌하는 사람에게 더 정이 갈 것"이라고 시원시원하게 대답해 인기를 얻기도 했습니다.

또한 김우중은 대한민국 최초의 경차 티코를 타고 출근하는 모습으로 남다른 마케팅 전략을 펼쳤다.

승승장구하던 대우는 IMF로 인해 위기를 맞았다. 당시 김우중은 김대중 대통령에게 금 모으기 운동을 제안했다. 그러나 대우는 결국 해체의 길을 밟았답니다.